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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의 진전이 답이다

 남북정상회담.jpg

 

대화란 대등하게 이야기함을 뜻한다. 어느 일방이 윽박질러서는 이미 대화가 아니다.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은 북과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내민 안은 핵무기는 물론이려니와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 무기도 다 내려놓으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북의 일방적 굴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존 로버트 볼턴(John Robert Bolton)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선호한다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이란 어떠한 것인가?

미국과의 외교 단교 이후 강력한 제재에 직면했던 리비아는, 당시 볼턴 등의 조언을 받아들여, 2003년 영국 비밀 정보국 M16을 통해 미국에 핵 포기 의사를 전했다.

이후 리비아는 공개적으로 “핵과 생화학 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았다. 이어 리비아는 핵무기 제조 장비와 관련 서류 등을 미국으로 보냈으며, 2005년 10월 자국 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했다.

이듬해인 2006년 미국은 리비아와 국교를 정상화했으며, 25년 만에 리비아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지게 되었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이 ‘리비아식 모델’인 것이다.

하지만 2011년, 미국의 상당한 영향력이 작동되었으리라 국제사회가 짐작하는, ‘리비아 민주화운동’ 등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카다피는 결국 축출되어,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데 이르렀다.

존 볼턴이 했던 몇 가지 발언들도 살펴보자.

2017년 8월 17일, 미국 폭스비지니스 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부셰르 원전을 공습하려면 앞으로 8일 안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핵 문제의 해법은 폭격을 가하거나, 이란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경 매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되는 볼턴의 이 발언은, 실은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들에 대해서나, 미국의 이익을 해외에서 관철시켜야 할 경우, 미국이 취하는 거의 기본 행태이기도 하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희망봉을 돌아야 대서양으로 갈 수밖에 없는 고비용‧저효율을 넘어서고자, 파나마 족에게 군자금을 대어 주고 파나마를 독립시킨 뒤, 파나마 운하를 뚫고 파나마 운하 100년 사용권을 획득한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 연안에서 정찰 중이던 미국의 매덕스(Maddox)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발표가 났다. 그 유명한 ‘통킹만 사건’이다. 직후 미국은 북베트남 폭격을 시작하였고, 베트남 전쟁에 적극 개입하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난 뒤 공개된 자료와 당사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서 ‘통킹만 사건’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1970년 11월,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칠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과 다국적 기업의 공작 등으로 인해 임기를 만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전투 중에 사망한다. 미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 일을 자신의 업적으로 기술하기도 했다.

2003년 핵무기 개발과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의혹을 내세우며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승리를 선언한 이후에도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흔적이나 생화학무기 등 어떠한 대량살상무기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민간을 포함하여 수 십 만의 사상자와 난민들을 발생시킨 이라크 전쟁은 2011년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전쟁 후 이라크는 곧바로 심각한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다시 볼턴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2017년 12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공화당 연말 행사에서, 볼턴은 “아무도 한국에 대한 리스크로 인해 대북 군사력 사용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이런 우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에 주는 리스크에 비해서는 작다”고 하였다.

2018년 2월 볼턴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북한에 대한 선제 폭격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도 했다. 선제타격 시점과 관련된 국제법상의 이론적 배경도 설명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미국 정보 당국의 평가로 봤을 때, 미국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서 “북한 핵무기가 완성된 후에 타격했을 경우에는 훨씬 위험한 상황이 전개된다”고 했다. 이 발언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6월 12일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의 기본 동력이, 북이 핵무력을 완성한 실력–2017년 11월 29일 북은 13,000km 이상 날아갈 수 있는 ICBM 화성 15형을 발사하면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다–에서 비롯됨을 볼턴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즉 북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 확보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압박작전(Pressure Campaign)’이 맞물리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이는 기존 ‘반핵‧평화운동’의 문법으로만 ‘북핵 문제’를 해석할 수 만은 없는, 국제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북의 비핵화’가 맞나? ‘한반도 비핵화’가 맞나?

1953년 1월 한반도 남쪽에 미국 최초의 핵 공격무기 ‘어네스트 존(Honest John)’이 실전 배치된다. 이후 1991년 12월 노태우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있기까지 다종 다양한 미군 전술핵이 남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1991년 미군이 전술핵을 철수한 것은, 우발적인 핵전쟁에 대한 미‧소의 우려가 있었고, 전략핵-핵 폭격기, 핵 항공모함‧잠수함, 대륙간 탄도탄 등-능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의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는 미국의 각종 전략핵무기가 보여주듯이, 한반도 남쪽은 여전히 막강한 이른바 ‘핵우산’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다.

세계 최강인 미국과 맞서면서 온갖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위협을 받아온 북이, 상대적으로 비용이 훨씬 적게 들지만 군사적 효과는 큰 핵무기 개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북으로서는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원인은 북이 보유한 핵무기가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북미간의 심각한 적대 관계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본 조건은 북미 관계의 정상화인 것이다.

그러나 70년이 넘는 세월을 갈등과 긴장 속에서 지속되어온 북미간의 대결‧적대 관계가 하루아침에 해소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북미관계를 제대로 풀어 나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따름이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같은 해 10월, 북의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한다. 클린턴 당시 미대통령과 메들린 울브라이트 국무장관, 코언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행정부 고위 관리들을 만난 뒤, 2000년 10월 12일 조명록은 울브라이트와 함께 ‘북미 공동 코뮤니케’를 발표한다.

그 내용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 상봉에 의하여 한반도 환경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강화하는 데 이롭게 두 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가 직접 겪어 봐서 알고 있듯이, 북미관계는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 함께 진전되었다.

‘남과 북이 함께 실질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답이다.

4·27 DMZ 인간띠 운동의 중심 구호가 판문점 선언 제 1조 1항,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인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방향과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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