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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련하는 것”

<만나고 싶었습니다>박순희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박순희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는 50년 동안 꼬박 여성 노동운동을 해온 노동운동가이다. 여성 노동운동의 산증인답게 그는 여성가족부에서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국무총리 수여)을 노동운동가로서 처음으로 받았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 노동운동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 박순희 공동대표. 초심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초심을 지금도 단련하고 있는 박순희 공동대표를 <주권자>에서 만났다. 대담은 정해랑 교육홍보위원장이 맡았다. 박순희 공동대표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를 맡은 바 있으며 현재는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 지도위원이기도 하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2.jpg

 


정해랑: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덥다고 하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대표님이 노동운동하신 지 거의 반세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객관적으로는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굴뚝 위에 올라가 농성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쌍용차 같은 경우에는 얼마 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놈이 그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변했고, 아쉬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순희 공동대표,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노동운동가로는 처음, “촛불승리의 결과”

 

박순희: 변했지요. 내가 노동운동을 시작한 것이 68년부터니까 딱 50년이 되었네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가 변하지 않는 그 풍토 때문에 말한 것이지요. 여전히 투쟁을 하는 사업장이 있고,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 역시 변화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쟁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여건이 존재한다는 것도 변화입니다. 이 변화 때문에 더욱 변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정: 지난 달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는데, 말씀을 안 해 주시니까 저희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과 수상에 대한 소감 한 마디 해주시겠습니까?

 

박: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변화 발전의 결과라고 봐요. 나 개인에게 준 것보다 여성노동운동에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여성들 목소리가 커졌다 어쩌다 하는데 사실 아직 멀었지요. 이전에야 여자는 남자들 뒷바라지나 한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 여성들이 점점 사회 진출을 하게 된 데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던 거지요. 그런 과정에서 여성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 지위 향상에 기여한 공이 있다는 것이 훈장을 받게 된 내용입니다. 1970년대의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기여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것 역시 변화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여성가족부라는 것도 없었는데 생겼고, 거기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준 것은 처음이라네요. 이것 역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싸운 결과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정: 노동운동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 당시에는 노동운동은 고난의 길일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했을 텐데요.

 

박: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했겠지요. 노동자가 된 것을 이야기해 보면, 67년부터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때는 직장이라고 하지 않고 공장이라고 했지요. 내가 당시에 갖고 있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3남 2녀 중에서 오빠 하나 남동생 둘이었어요. 아버님이 철도청에 근무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살림은 아니었어요. 내가 고집을 했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내용이 들리면 그것이 내 근심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내가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양보하자. 이른바 ‘누이 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의 생각이지요. 그래서 집 가까운 직장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상무실에서 심부름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때는 급사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현장엘 가보니까 거기가 좋아 보여요. 그래서 현장으로 옮겨서 일하면서 열심히 기술을 배웠지요.

 

“노동자니까 노동운동을 했지요”

가톨릭노동청년회와의 만남이 노동운동 입문 계기

 

정: 그렇게 해서 노동자가 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가 다 노동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노동운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요.

 

박: 그것은 말하자면 좀 길어요. 아까 말한 대로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기술을 열심히 배운 뒤 대한모방이라는 큰 공장으로 옮겼습니다. 저희 집안은 원래 가톨릭 집안이에요. 아버지가 신앙생활에 얼마나 엄격하시냐 하면 일요 미사를 안 가면 밥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실 정도니까요. 그런데 내가 직장 들어간 다음부터 성당에 안 나갔어요. 성당은 고등학생부, 대학생부 이런 식으로만 있고, 청년노동자가 들어갈 만한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안 갔고, 그러다 보니 종교도 부정하기 시작했지요. 어머니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고 안타까워 하셨죠.

그러던 중에 직장에서 어떤 친구가 접근을 한 거예요. 성당에 가자고 하네요. 안 간다고 했지요. 그 친구한테 막 퍼부었어요. 신이 어딨냐?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친구가 가톨릭노동청년회라고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곳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도 안 간다고 했어요. 몇 차례 거절하면서도 이 친구가 다시 제안 안 하나 하는 여운이 남곤 했어요. 그러다가 못 이기는 척하고 갔지요.

 

만나고 싶었습니다. 1.jpg


정: 노동운동을 아시게 된 첫 계기는 가톨릭노동청년회라고 보아야겠네요.

 

박: 네 그런 셈이지요. 가톨릭노동청년회에 일반회라고 1년에 한두 번 조직을 알리는 행사가 있어요. 거기에 초대를 받아서 갔지요. 그때 지도신부가 염수정 추기경이에요. 그때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처음에 안 가겠다고 하던 것과는 달리 정말 열심히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이 있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러다가 대한모방에서 열심히 일해서 조장이 되었어요. 그때 대한모방 1공장에는 노조가 있었는데, 제가 다니던 2공장에는 노조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자연히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당시 가톨릭노동청년회는 노조를 만드는 것보다 생활변화, 의식변화를 위한 활동을 위주로 했지 노조를 만드는 활동까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그 당시 노조 만드는 데 집중을 하던 도시산업선교회를 찾아가게 되고, 조지송 목사를 만나서 교육도 받고 노조 결성 준비도 하게 되지요.

 

정: 생활변화, 의식변화를 위한 활동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지요?

 

박: 당시에 노동자에 대한 천시가 워낙 심하다 보니까 자신이 노동자라는 걸 숨기려고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욕들을 많이 하고, 남의 옷을 빌려 입는 일들도 많았지요. 나도 처음 공장 들어가서는 대학생 차림을 하고, 대학생들 보는 책이나 노트를 끼고는 출퇴근을 하곤 했어요.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 노동자라고 가르치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노동자라는 것을 숨기려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그래서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는 1주일 생활 약속을 하고, 1주일 뒤에 실천을 보고하는 일들을 했어요. 그래서 거짓말하지 말자, 욕하지 말자, 남의 옷 빌려 입지 말자고 했지요.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정: 그러다가 노조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시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하신 거네요.

 

박: 아니에요. 그 과정에 또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스무 살만 넘어도 집에서 시집 가라고 압력을 넣었지요. 그러니까 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나에게는 당시 두 가지 길이 있었지요. 하나는 노동운동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의 길이었어요. 그 중에서 나는 수녀가 되기로 결심을 해요. 노조를 결성하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니까 수녀가 되려고 노조 결성을 남아 있는 사람들한테 미루고 수녀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하다가 나중에는 직장도 퇴사하지요.

9월에 수녀원에 입회할 예정이었는데, 8월에 수해가 나서 집이 다 잠기는 일이 발생해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다음 해에 가기로 하고 또 수녀 공부를 더 하기로 하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내 속에서 생깁니다.

수해 뒤에 수녀원에 가보니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수해 전과 수해 뒤의 수녀원의 인상이 달라졌어요. 아방궁 같이 보여요.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수녀원은 정릉에 있는 곳이었는데, 사회활동을 많이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위한 사목은 하지 않는 곳이었지요.

수녀원 간다고 사표를 내었으니 직장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열심히 하게 되지요. 남부연합회 회장을 하게 됩니다. 그때 원풍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이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바뀌는 때였어요. 그때 내가 소모임 둘을 지도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다 한국모방 조합원들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노동단체가 없으니까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 경수도시산업선교회가 연대해서 활동하게 되지요. 그때는 연대라는 말도 없었어요.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연대인 거지요. 그때부터 한국모방 문제에 집중했지요.

 

 

“노동운동은 하느님의 뜻이라 여겨져”

노조 건설 사업으로 본격적인 노동운동 진입

 

 

정: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하느님이 수해를 통해 이끄신 거네요. 그때 주요한 활동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회사나 정보기관 등이 가만 있지 않았을 텐데요.

 

박: 말씀 잘 하셨네요. 종교를 가진 저로서는 그렇게 생각하지요. 하느님이 이끄신 거라고.

그때 주요한 활동은 퇴직금 받아내기였어요. 퇴직금을 걸핏하면 안 주어요. 그리고 그때는 은행 이용이 활발하지 않을 때인데 회사가 저금을 받았어요. 이수금이라고 했어요. 은행보다 이자 조금 더 주고 퇴직할 때 준다고 해놓고 미루는 거예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결혼자금 등 마련하려고 회사에 맡긴 돈을 못 받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에요. 그래서 투쟁위원회를 만들어서 회사에 압력을 넣는데 노조는 완전 어용이지요. 대의원대회에서 발언했다고 가톨릭노동청년회 관계자라고 해고하기도 했어요. 회원도 아닌데요. 아무튼 그 탄압을 이야기하면 밤새워야 돼요.

그런 중에 1973년도 9·3사태라고 하는 게 있었어요. 한국모방 조합원 600명이 기숙사에서 서로 연락해서 한꺼번에 명동성당에 가서 6시 미사에 참석하는 일이 생겨요. 그때만 해도 미사포 안 쓰면 성당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때였어요. 그런데 미사포도 안 쓴 수백 명이 명동에 나타나고 성당 미사에 들어가니까 난리가 났어요. 그때는 유신 선포되고 얼마 안 될 때니까 엄청나게 큰일이었지요. 그때 노동청년회 연합회장이 이창복 선생이에요. 그걸 통해서 승리감을 얻고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어요.

 

정: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구심 원풍모방 민주노조가 그렇게 탄생했군요. 그 뒤에 한국모방 민주노조 활동은 어땠나요?

 

박: 민주노조를 만들고 들어가 보니까 완전히 썩은 거예요. 그때는 섬유업체들이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정도로 잘 될 때였어요. 그런데 한국모방이 유명하고 제일 잘 나가는 회사인데 조건이 형편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한국모방이 부도가 납니다.

돈을 그렇게 잘 버는데 왜 부도인가? 노조에서 생각해 보니 그때 사장이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데 아마도 박정희 정치자금을 대다가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봤어요. 물론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그래서 민주노조가 된 노조가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지요.

 

정: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하겠네요. 그러면 그때까지는 한국모방 바깥에서 소모임 지도 등을 통해 노조를 도우셨네요. 현장에 직접 들어가시게 된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였나요?

 

박: 아방궁 같은 수녀원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수녀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앞에서 말했지요. 그때만 해도 그런 데를 찾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부산에 마리아 수녀원이라는 데서 소년의 집을 운영하는 것을 알았어요. 버려진 청소년들을 키우면서 이모처럼 대하는 수녀원인데 거기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남부연합의 지도신부님인 도요한 신부님이 극구 말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돈보스꼬 청소년센터에 들어가서 거기서 계속 노동운동을 하게 된 거죠. 당시에 서강대 산업문제연구소는 야간이었고, 고대노동문제연구소는 주간에 했어요. 거기 양쪽에서 공부를 했죠.

그때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있었어요. 그 뒤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인 바보회 동지들을 만나고, 이소선 어머니를 뵙고 하면서 내가 노동운동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굳힙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 소모임을 백양메리야스, 태창메리야스 등 여러 사업장에서 많이 조직합니다.

그런데 73년 12월 30일에 한국모방 회사 간부와 민주노조의 망년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민주노조가 들어선 때지요. 망년회를 하고 난 뒤 2차를 가자고 하는데 지부장이 거절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그때까지 속이 뒤틀린 게 폭발해서 주먹으로 지부장 얼굴을 때린 거예요. 그때는 으스대느라고 남자들이 알반지를 끼고 다녔는데, 그것 때문에 지부장이 중상을 입게 됩니다. 연말이라 조합원들이 집에 가고 그랬을 땐데 이 소식을 듣고 모였습니다. 난리가 난 거지요.

74년 1월 5일에 돈보스꼬 청소년회관에서 사상 처음으로 신구교 합동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열댓 개 종교단체와 당시 동작구 국회의원 김수한 씨도 왔어요. 그래서 결국 사장을 구속시켰지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런 문제로 구속된 최초의 사장이었을 거예요.

그 뒤 입원한 지부장 면회를 갔는데 거기서 그 분이 현장에 들어올 것을 간곡히 설득하였어요. 그때 내가 직포 기술자라는 것은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분의 말에 마음이 기운 것은, 당시 회사가 지부장이 성이 지 씨라서 ‘지 부장’인 줄 알 정도로 노조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여기가 민주노조가 되었으니 여기를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의견을 수렴했는데 다들 들어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조건을 제시했어요. 당시에는 그렇게 큰 회사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만 했어요. 그리고 소개자가 있어야 했어요. 소개자를 통해 노조활동 못 하게 하려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고, 직포 기능공을 모집할 때 알려주어서 시험을 봐서 들어가면 들어가고 안 되면 다른 데로 가겠다고 했지요.

그때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어디든 현장에 갈 생각을 했을 때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를 시험 보는 반장이 돈보스꼬에서 기자회견할 때 거기 참석한 사람이었어요.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아는 체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니 떨어지겠어요? 물론 내가 기술로는 충분히 될 수 있지만 시험 보는 사람이 그러니까요. 지금도 만나고 가톨릭에 귀의해서 내 대녀가 되었어요. 내가 대모가 된 거지요. 지금도 나더러 엄마를 그때 떨어뜨렸어야 고생 안 하시는 건데 하면서 농담을 해요.(웃음)

 

‘식판 던지기’, 현장 차별을 없애자는 운동

사측의 노동자 분열에 ‘더불어 사는 것’을 목표삼아야

 

정: 정말 드라마틱하네요. 하느님의 뜻인지 운명인지 아무튼 여러 계기가 여기까지 오실 수밖에 없게 하네요. 그 뒤로는 원풍모방에서 노조 활동을 하시다가 1982년에 침탈 당하면서 해고자가 되신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 세월이 또 많이 흘러서 이후에 노동운동도 많이 변했고,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발전에 따라서 노조도 많이 생겼지만,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문제도 등장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 같은 경우에는 과연 해결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절망적인 의문도 나오는데요. 그때 노동운동과 지금 노동운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 공통점은 자기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공장에 다닐 때도 공원과 사원으로 분열을 시켰어요. 작업복도 다르게 했죠. 식당도 달랐어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하던 것이 식판 던지기였어요. 또 작업복 동일하게 하라는 거였구요. 그런 것이 지금의 비정규직 차별과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나 절박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지금은 여러 가지로 많이 변했지만,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는 데에는 약한 것 같아요. 그걸 교섭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돼요.

우리가 어용노조 때는 남녀 임금차별이 7:3까지 되었어요. 우리는 민조노조가 되면서 그걸 먼저 극복하려고 교섭에서 제안을 했지요. 그래서 5:5로 만들었어요. 그러고 나오면 남자들한테 욕도 많이 먹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걸 계속 교육을 했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정책도 달라져야 하고, 회사 측도 달라져야 하지만, 노동자들도 앞장서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해야 돼요. 지금은 이전에 비하면 교육시설이나 여건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안타까워요. 생각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 지금 헌재 앞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했던 분들이 매일 점심 때 1인 시위를 하는 데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고, 원풍노조에서 활동했던 분들의 근황은 어떠신지요?

 

박: 우리 조합원들은 아주 신났어요. 서로 하겠다고 해요. 사법농단 때문에 권리를 빼앗긴 분들이 169명이에요. 그때 해고 당한 사람들이 600여 명인데, 그놈들이 명단을 가지고 가서 지금 연락되는 사람이 200여 명밖에 안 돼요. 그 중에 명예회복을 한 사람이 169명이에요. 그런데 사법농단으로 다시 권리를 빼앗겼어요. 그래서 지금 1인 시위를 하는 거지요.

우리가 노조를 빼앗긴 게 36년이 되었어요. 9월 27일인데 그때를 전후해서 모두 모여요. 지금도 150여 명 정도 옵니다. 소모임별로 보기도 하고요, 9개 부서가 있었는데 부서별 모임도 합니다. 이렇게 하니 공통으로 모이는 게 1년에 4-5회 정도 돼요. 남편들까지 같이 오기도 하고요, 자녀들도 모이고, 그 자녀들끼리 결혼한 경우도 네 쌍이나 있어요. 우리 모토가 ‘못 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인데, 그게 책으로도 나왔어요. 자녀들의 모임은 ‘못 다 이룬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에요.

분리수거 리더도 하고, 통반장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 걸 하면서 솔선해서 좋은 일 하려고 하지요. 아름다운 아파트 만들기도 하고요, 사람들을 설득해서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 놔주고,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 태양광을 설치하기도 한대요. 아주 신나게들 살지요. 언제 어디서든 좋은 일 하면서 살아가자는 신념으로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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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은 대일밴드가 아니다”

초심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련하는 것

 

정: 노동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박: 지금도 교육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요. 노동운동은 대일밴드가 아니다. 자판기도 아니다. 그런 운동은 안 된다. 그런데 노력을 안 하고 공부를 안 해요. 공부는 의식화예요. 그것은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겁니다. 한 번 됐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강하게 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자기가 편해지고 이해관계가 걸리면 노동운동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려운 것을 찾아다니고 열심히 자기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는 근로기준법 줄줄줄 외워서 교섭에 들어가는 사람들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 들 때가 있어요.

처음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돼요. 계속적인 노력과 단련이 있어야 되는 거지요.

 

정: 마지막으로 주권자전국회의의 공동대표이신데요. 주권자전국회의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이 질문을 참 잘하셨어요. 주권자전국회의가 그 나름대로 역할은 한다고 생각하는데, 개별 의식화가 아니라 조직화, 그리고 전국적인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생각할 때마다 민통련 활동이 떠올라요. 그때 정말 어려울 때인데 예를 들어서 권인숙 성고문 같은 것이 생기면 전국적인 조직화를 했어요. 그때는 내가 전북지역에 있었는데, 민통련을 통해서 전국적인 문제로 받아서 했지요. 그 지역의 수녀, 학생, 노동자가 횃불 들고 시위도 했어요.

그런데 주권자전국회의는 그런 게 없어요. 왕년에 뭐 했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주권자전국회의는 시민사회단체와는 달리 구심점을 갖고 문제를 전국화하는 그런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 긴 시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좋은 말씀 깊이 새기고, 특히 마지막 말씀을 통해 성찰하고 변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인터뷰는 주권자전국회의 회보 <주권자> 3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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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알립니다>2018 한국사회포럼

    한국사회 전환의 키워드-성찰, 교차성, 전환 <2018 한국사회포럼> : 2018년 10월12일(금)~13일(토) : 경의선 공유지, 서강대학교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되었던 한국사회포럼이 촛불 2주기를 맞아 다시 한국사회를 찾아옵니다. 한국사회포럼은 오랜 기간 ...
    Date2018.10.02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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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종철 시론> 민족 자주·자결의 길 활짝 연 ‘평양공동선언’

    연합제와 연방제 논의 준비할 때 민족 자주·자결의 길 활짝 연 ‘평양공동선언’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북녘 땅에서 가진 사흘 동안의 만남은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인 드라마를 잇달아 만들...
    Date2018.10.02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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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최한욱의 영화로 보는 세상>유신 최후의 날을 재연한 '그때 그 사람들'

    <최한욱의 영화로 보는 세상>유신 최후의 날을 재연한 '그때 그 사람들' 올해 상반기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부도덕한 성적 욕망 때문에 적지 않은 유명인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인물들도 적지 않다. 안희정 성추문은 ...
    Date2018.10.02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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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주권자의 눈>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걸음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걸음 바로 눈앞에 전쟁이 어른거리고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대전으로 옮겨갈 걱정이 점점 높아졌을 때, 4월 판문점 선언과 6월 북미 공동성명은 높아만 가던 전쟁 가능성을 잠재웠고 한반도에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나타...
    Date2018.10.02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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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만나고 싶었습니다>박순희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초심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단련하는 것” <만나고 싶었습니다>박순희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박순희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는 50년 동안 꼬박 여성 노동운동을 해온 노동운동가이다. 여성 노동운동의 산증인답게 그는 여성가족부에서 수여하...
    Date2018.10.02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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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공개질의서] 판문점선언 국회비준에 대한 입장

    판문점선언 국회비준 찬반을 묻는 공/개/질/의/서 ● 발신 : 주권자전국회의(kncs.kr) ● 수신 :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내용 : 판문점선언 국회비준에 대한 20대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 ● 회신요청일 : 2018년 9월12일(수요일)...
    Date2018.09.10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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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안내] 아시안게임 원코리아 응원단 모집

    2018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을 응원하는 <2018아시안게임 원코리아 공동응원단>을 모집합니다. 1. 개요 - 명칭 : 2018 아시안게임 원코리아 공동응원단 - 규모 : 100명(일반 70명, 대학생 30명) / 주최단체 공동구성 - 기간 : 8월 17일(금)~21일(화, 아침 한국 ...
    Date2018.07.26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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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보고]'한반도 평화협정 쟁점은 무엇인가?' 토론회(자료집 포함)

    6월 26일 오후2시 광화문 변호사회관 10층 조영래홀에서 2017민주평화포럼과 주권자전국회의가 공동주최하고, (사)국민주권연구원에서 주관하여 한반도 평화협정 토론회 <한반도 평화협정 쟁점은 무엇인가?>를 개최하였습니다. 평창올림픽 이후 남과 북은 4.27...
    Date2018.06.27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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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남북간 판문점 선언 이행이 북미관계 개선의 출발점이다

    남북간 판문점 선언 이행이 북미관계 개선의 출발점이다 -이래경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건방진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북한 관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6월12일 싱가포르 회담을 기정 사실로 받아 들였고, 특히 북미정상회담에 실무책임을 지고 ...
    Date2018.05.30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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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김종철 상임고문,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의 차이>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의 차이 민족적 동질성과 ‘미국 제일주의’의 산물 -김종철 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고문- 최근 며칠 동안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한반도가 요동치는 것을 보며 나는 ‘문재인·김정은 ...
    Date2018.05.30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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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잘 나가는 집권 여당이 찬 똥볼>

    잘 나가는 집권 여당이 찬 똥볼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사진출처 : 뉴스민> 헌정사상 현재의 더불어민주당(더민주)처럼 잘 나가는 집권 여당도 없을 듯하다. 상대가 되어야 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과 구속, 이명박 구속 등으로 이...
    Date2018.05.30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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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보고]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연속강연회

    [보고]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연속강연회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주권자인 국민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며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켜켜이 쌓인 적폐 청산 뿐만 아니라 ‘당당한 나라’를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한반도 문제와 국...
    Date2018.05.25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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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풀영상]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5강_문화 '할리우드가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한욱 방송인

    [연속 강연회]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5강_문화 <할리우드가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은 무엇인가?> 최한욱 방송인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역설과 미국 패권주의의 역설은 같습니다." #최한욱 시사평론가가 말하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로 본 미국 ...
    Date2018.05.25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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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정해랑 공동대표,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이다. 이제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자들은 극소수로 몰리고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민주화운동으로 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이 ...
    Date2018.05.24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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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김종철 상임고문, <홍준표, ‘문재인 정권과 북한이 트럼프에 통사정’ 했다고?>

    홍준표, ‘문재인 정권과 북한이 트럼프에 통사정’ 했다고? 북미정상회담 날짜 결정 두고 ‘남북평화쇼’라고 비난 김종철 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지난 11일 열린 ‘6·13 지방선거 경북 필승 결...
    Date2018.05.24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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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풀영상]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4강_군사 '미국의 군사주의와 한반도 평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연속 강연회]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4강_군사 <미국의 군사주의와 한반도 평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핵 문제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게 미국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에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말하는 미국의 군사주의와 한...
    Date2018.05.17 By주권자전국회의 Views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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