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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욱의 영화로 보는 세상>유신 최후의 날을 재연한 '그때 그 사람들'

 

 

올해 상반기 미투운동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부도덕한 성적 욕망 때문에 적지 않은 유명인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인물들도 적지 않다. 안희정 성추문은 미투운동의 절정이었다. 한때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그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결국 정계를 떠났다. 자업자득이다. 미투운동이 정치권을 겨냥하기 시작할 때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인물은 박정희다. 만약 박정희가 살아있을 때 미투운동이 촉발되었다면 한국 미투운동은 전례 없는 혁명적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 1.jpg

 

임상수 감독의 2004년 <그때 그 사람들>은 10·26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 블랙 정치 코미디다. 개봉 당시 민감한 내용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2005년 박지만 씨는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비밀요정에서 반라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장면, 박정희가 일본어를 사용하는 장면, 그리고 일본가요를 잘 부르는 가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장면 등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서울지방법원은 영화의 시작과 끝의 다큐멘터리 장면 3분 50초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제작사 MK픽처스는 이 장면을 삭제한 후 개봉했다. 하지만 박 씨가 다시 영화상영금지 및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개봉 이후에도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2006년 서울 중앙지법 민사63부는 이 영화가 박정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들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상영금지 청구소송은 기각했다. 2008년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는 극장 상영 시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고,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인 것을 밝혀라"고 판결했다. 다만 1억 원의 배상금은 피고 측에 반환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애초 <그때 그 사람들>의 자막은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였다. 자막 수정은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픽션'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모든 극영화는 허구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픽션'에 '픽션'이라는 자막을 넣어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픽션'이라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지만, 오히려 사실에 철저히 근거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사실에 가깝다.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일까?

 

100명이냐 200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화의 도입부에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한석규)는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한 여인의 철없는 어머니(윤여정)로부터 하소연을 듣는다.

 

"새벽에 언뜻 깨보니 자기 몸을 쓰다듬고 계시더래요. 곱다. 정말 곱다. 이러시면서. 한없이. 계속 온몸을. 제가 눈을 뜨고 배시시 웃으니까. 그제서야 멋쩍은 듯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지가 그냥 자빠져 있을 수 있겠어요. 어르신 옷 먼저 입으시라고. 저는 벗은 채로 수발을 들었대요. 벗은 채로. 그러다가 결국 어르신이 제를 한 번 다시 품어주시고.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그 연세에. 그리곤 제를 꼭 품으신 채로 그러셨대요. 꼭 다시 놀러 오라고. 꼭 다시 보자고."

 

각하의 성은(?)을 입은 딸의 팔자를 고쳐 보려는 욕심에 철없는 어머니는 청와대까지 쫓아가 소동을 벌였지만 어르신은 그녀의 딸을 다시 부르지 않았다. 철없는 모녀는 청와대가 아니라 중정의 남산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 에피소드는 서슬 퍼런 유신 시절,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로 세간에 떠돌던 '괴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대사는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이다. 하지만 훗날 그 괴담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잇달았다.

 

김재규의 변호사였던 안동일은 2005년 출간된 회고록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을 거쳐간 여성이 200명 가량 되는데, 이 때문에 박선호가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웬만한 일류 연예인은 대통령에게 다 불려갔었다. 당시 항간에 나돌던 간호장교 이야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 등이 모두 사실이었다"고 폭로했다.

 

박선호는 법정에서 ('대통령이 여인'들이) "지금도 수십 명이 일류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명단을 밝히면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킨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각하께서 평균 한 달에 열 번 (궁정동 안가에) 나오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법정에서 박정희의 난잡한 사생활을 폭로하려고 했지만 김재규의 만류와 검찰의 제지로 더 이상 증언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역사의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김재규와 함께 교수대에 올랐다.

 

박정희의 여성편력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측근들은 그의 여성편력 때문에 이른바 '육박전'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육영수는 방첩부대장이었던 윤필용에게 "이건 절대로 여자의 시샘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하께 여자를 소개하면 소개했지 왜 꼭 말썽 날 만한 탤런트들을 소개합니까?"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큰 실패가 없지만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서 피해의식이 심하거나 심한 고독감을 느끼는 경우 남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성행위를 하면서 재확인하고 싶어 할 때 섹스 중독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섹스 중독은 피해의식과 고독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여인'들에 대한 흉흉한 괴담에 대한 관련자들의 증언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피해자가 100명인지, 200명인지는 증언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재권력에 의한 성적 착취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픽션'이 아니라 '팩트'다.

 

어느 여배우의 비극

 

김삼화 씨는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양산도>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그녀는 6세부터 무용을 시작해 15세 때 미국 대통령 특사 환영연회에서 공연하는 등 무용가로도 꽤 명성을 얻었다. <논개> <이국정원> <대도전> 등 15편 안팎의 영화에 출연했고 '김삼화무용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촉망 받는 배우이자 무용가였던 그녀의 삶은 어르신의 각별한 사랑(?)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어느 날 말로만 듣던 '대통령의 채홍사'가 그녀의 집에 찾아 왔다.

 

"각하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잠깐 청와대에 다녀오게 화장하시고 15분 이내로 떠날 준비를 하세요."

 

비극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그녀를 엄습했다. 그녀는 "이제 갓난애의 엄마로서 신혼 유부녀입니다. 홀로 있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저는 좀 빼줄 수 없을까요?"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영화사의 스태프와 결혼해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원을 '채홍사'는 냉정하게 일축했다.

 

어르신 접대는 보통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관례(일설에 의하면 당시 중정 측은 같은 여자를 두 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였지만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김삼화 씨는 그 날 이후 거의 매주 어르신께 불려갔다고 한다.

 

한 달 뒤, 그녀의 남편은 갑자기 ‘무시무시한 곳’에 다녀왔다며 그녀와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 후 김삼화 씨는 각하의 소개(?)로 돈 많은 재미교포 늙은이와 결혼해 자의 반 타의 반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주한인신문 <한겨레저널>의 김현철 씨가 김삼화 씨와의 인터뷰를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관위가 김현철 씨의 칼럼을 SNS로 퍼 나른 누리꾼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뒤늦게 논란이 됐다. 김삼화 씨는 이미 작고했기 때문에 이 기사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유신 로맨스의 비극적 여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김삼화 씨뿐만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문일봉(본명 문병옥) 씨는 1991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1962년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나 딸 하나를 낳았고,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관계를 유지, 서울 중구 문화동 집에서 딸 둘을 더 출산했으며 친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친필 편지 3통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1995년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의 이순희 상임부회장은 스님이 된 문 씨를 만나 기사 내용이 허위라는 각서를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9년 대법원은 "문병옥의 각서는 친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여인들의 주장을 검증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김삼화 씨는 이미 고인이 됐고, 문일봉은 속세를 등진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며, 100명인지 200명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엄연히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권력자, 국가권력에 의한 성적 착취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범죄행위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일부 군인들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것처럼 '대통령의 여인'들도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며, 이들에 대한 성적 착취는 독재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어르신은 세상을 떠났지만 '대통령의 여인'들은 당시 젊은 여인들이었으니 만큼 아마도 대부분 생존해 있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말이 없지만 적어도 국가 차원의 사과는 필요하다. 어쩌면 박근혜의 감옥행은 아버지의 업보일지도 모른다. 사필귀정이다.

 

이 글은 주권자전국회의 회보 <주권자> 3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최한욱씨는 팟캐스트 <반지하전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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