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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민회포럼>민주주의의 민주화와 직접민주주의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주권자전국회의는 지난 11월 1일 열린 <시민포럼>에서 '촛불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 모색'을 주제로 민회포럼을 진행했다. 이 날 발표된 논문을 소개한다. 이 글은 주권자전국회의 회보 '주권자' 4호에 게재되었다. 

 

 

1.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

 

2018년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7차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주권자전국회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서울시 관계자 등이 참석하여 저로서는 외롭지 않은 회의였습니다. 실은 촛불 혁명의 성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가능했다는 것을 알리는 공공외교의 장으로 삼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힘이 닿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도 오성운동의 주역들이 로마 시장에 당선되고 내각에 적극 진출하게 되었기 때문에 직접민주제가 가져온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역대 어느 대회보다 참가자도 많았고 발표도 활발했습니다.

2년 전 제6차 대회는 스페인의 상 세바스티안에서 11월 16일에서 19일까지 열렸습니다. 제6차 대회에서는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정치권 진출을 자축하는 분위기에서 대회가 이루어졌습니다. 2016년과 2018년 대회는 21세기의 유럽의 새로운 정치를 여는 흐름을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가 수렴해 가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직접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스위스가 아닌 유럽 안에서 열린 두 차례 회의가 민주화 운동의 정치적 성과와 연결된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비유럽 지역에서의 민주화운동의 성과와도 결합된 사례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튀니지의 튀니스 대회도 아랍의 봄을 순조롭게 정착시킨 민주화의 성과와 함께하는 회의였습니다. 튀니지는 시민운동의 역량을 통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적 대화를 주도하여 민주화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응원하기 위해 해당 단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2014년 직접 민주주의 세계대회가 끝나고 그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어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시민운동과 국민적 차원의 대화를 통한 통합을 기념하기 위한 회의였습니다. 지난 3번의 직접민주주의 세계대회는 최근의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자축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회의였다는 점에서 어느 대회보다 열기가 높았습니다.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가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시작할 때는 이렇게 대회가 풍성해지면서 커질 줄 예상 못 했습니다. 지금도 스위스에서 열린 제1차 대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1차 대회는 2008년에 직접 민주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의 아르가우 주 아라우 시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인구 2만 명의 소도시인데 마을문화관에 세계 각국에서 온 직접민주주의 활동가와 연구자가 열띤 토론을 했습니다. 스위스 스스로가 직접민주주의 세계 대회를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민주정치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주도하여 대회가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인구 2만의 소도시가 훌륭한 문화관 등의 공공시설을 갖추고 세계대회를 훌륭하게 치러낸 저력이 바로 직접민주주의에서 온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제일 같은데 10년이 지났습니다.

 

제2차 대회는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여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대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싶은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 무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함께 어려운 가운데 대회를 치러냈습니다.

서울 다음에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그리고 튀니지의 튀니스를 거쳐 대륙별로 한 번씩 열린 셈입니다. 이제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와 스페인의 상 세비스티안, 그리고 이어서 로마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유럽 각국에서 대회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회를 참석할 때마다 아시아에서는 저희만 참석하다시피 했는데, 2016년 상세바스티안 대회에 일본과 대만에서 처음 참석하였고, 2018년 로마 대회에는 한국 일본 대만에서 여러 명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직접민주제에 대한 관심이 그 만큼 확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제가 2008년 스위스 아라우에서 제1차 직접민주주의대회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시위 참여가 직접 행동, 즉 직접 민주정치라는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였는데, 당시 1차 회의에서는 유사 직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것이 발제의 주조를 이루었습니다. 즉 당시 유행하던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의 주민참여 예산제는 당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직접민주제가 아니라는 주장, 시위나 청원은 직접민주제가 아니라는 주장, 한국에서 시행되는 헌법 개정안을 결정하는 국민투표제나 당시 핵폐기물 저장소에 유치를 결정했던 주민투표 등은 플레빗쓰사이트(Plebiscites)이기 때문에 직접민주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직접민주제를 발의권과 결정권(Initiatives & Referendum)으로 규정짓는 것에 대해 많은 의문을 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게 직접 민주제는 시위, 청원, 주민 소환제, 주민투표제로 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 격차를 인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역량은 주로 정당 민주화(낙천 낙선운동), 청원,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 참여예산제로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2008년 당시 유럽의 직접 민주제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관심은 유럽 연합 차원에서 발의권과 투표에 의한 결정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제도 설계가 과녁을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념의 엄밀성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대회는 참여민주주의의 다양한 성과로 수렴해가는 폭을 넓히려는 추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 이전의 운동 과정을 포괄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시민교육의 중요성, 참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관심의 영역이 좀더 다양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스위스의 경우에는 헌법 개정안 발의는 물론 일반 법안 발의도 시민들이 직접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5만 명의 서명이 있으면 됩니다. 헌법 개정안을 위해서는 18개월 동안 1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면 됩니다. 이 발의된 법안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투표를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직접 발의권이 보장되고 그 발의안을 직접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좁은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라고 합니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스위스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경제도 탄탄합니다.

 

유럽에서는 두 번째로 세계 직접 민주주의 대회를 유치하고 있는 산 세바스티안도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분권과 자치가 발달했습니다. 바스크 지방은 직접 민주주의뿐 아니라 인근에 있는 몬드라곤은 사회적 경제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상 세바스티안은 미슐렝 별점이 높은 식당이 많은 곳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패스트 푸드가 세상을 휩쓸어도 전통적인 요리법의 근간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는 요리사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시민은 동시에 훌륭한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공공 문제에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직접민주주의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독일 연방 국회의원은 기차에서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국회의원들과 같은 수준으로 법안에 대한 토의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 그들이 누구인지를 캐물었습니다. 발의안을 만들고 투표를 기획하는 스위스의 보통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독일에도 적극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고자 하는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결정된 정책안에 대한 반대 시위가 많은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억울한 일이 많아 청원도 많습니다. 그러나 청원이나 시위는 결정에 간접적인 압력 또는 참작의 대상은 되지만 직접적인 결정권은 없습니다.

 

정치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효율성에 대한 요구가 높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정책의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 혈세의 낭비, 불공정 시비 등을 방지하는 것도 효율성에 포함됩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런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열면서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이 만들어 졌습니다. 세계경제포럼과 사회포럼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다루는 의제들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해마다 대회가 개최되면서 점점 그 차이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는 투명성, 민주적인 의사 결정, 설명 책임, 그리고 반부패가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공공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직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참여를 통한 개입만이 정치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은 이제 정답이 되었습니다. 정답을 알았으니 이제는 실천이 문제겠지요.

 

2. 직접민주제와 민치

 

민치의 주체인 民은 누구인가? 市民, 國民, 民衆, 人民 모두 民자가 들어가는 번역어이다. 각각의 번역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의 정치적 의제와 결합하면서 특정의 정파적 지향을 가지는 것으로 왜곡되어 해석된다. 분단 상황에서 링컨 대통령의 People은 용인되지만, 그것을 인민으로 해석하게 되면 좌파로 오인된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허용되는 단어는 시민 또는 국민이다. 民에 대한 번역 자체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民治의 주체인 民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 民에 대한 공론이 깊어지기도 전에 시장에서의 소비자라는 단어, 최근에는 국민ㅇㅇ이라고 하면서 국민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시민이라는 단어를 차용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도시민이라고 오해하여 농촌은 배제하는 것이냐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선거에서는 민을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유권자로 규정한다. 그러나 민치의 주체인 민을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로만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추상적 차원에서의 民은 엄밀히 말하면 사익을 넘어선 공민이다. 유권자를 공민으로 만드는 것은 집합적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파퓰리즘이란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또한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도 함께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특정 정치인의 사익에 동원하기 위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것을 대중 영합주의 또는 파퓰리즘이라고 하고 대표적으로 히틀러의 파시즘과 그 비극을 예로 든다.

 

독일이 직접 민주제를 채택하지 않고 민주시민교육을 연방과 지방 그리고 정당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이유도 포퓰리즘의 비극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데모크라시 인터내셔널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운동을 펼치는 독일 운동가들은 이제는 통일 독일이 히틀러 시대의 포퓰리즘을 넘어 성숙한 민주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직접 민주제를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정치 엘리트를 통한 대의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직접 민주제를 위한 개혁을 하려면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한국민은 스마트하고 열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론장을 열어주고 발의권과 발의에 대한 결정권, 그리고 국회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한 수정제안권 등을 부여하게 되면 정치 발전에 많은 진전을 가져올 수 있고, 촛불 시민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효능감을 가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치의 원론을 회복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2. 정권 차원이 아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 결정은 의무적으로 국민 투표(Mandatory Referendum)에 부의할 필요가 있다. 외국과의 조약의 문제, 헌법 관련 사항, 예산이 과다하게 투여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구조적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할 수 있다.

 

3. 공론을 구성할 수 있는 여론 매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직접민주제를 채택하게 되면 힘 있는 사람의 동원의 도구가 된다. 민주시민교육이 성숙하지 않고 자본의 힘이 너무 과잉 대표되면 미국에서처럼 시민운동을 통해 서명을 받는 것보다 서명 대행 회사가 더 성행하는 경우도 있다. 공론에 의해 합의된 금기를 깨는 데도 직접민주제가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카지노의 합법화, 마리화나 합법화, 줄기세포 관련 사안 등이 다 서명회사를 통해 발의된다. 정당을 통해 차마 발의되지 못하는 사안도 시민 발의의 이름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성의 공적 사용, 공민으로서의 규준이 전제되지 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4.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집단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 매체가 공론 형성의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현재의 매체는 공론 형성보다는 엔터테인의 기능에 더 치중한 나머지 정치의 엔터테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편집권의 사주로부터의 독립, 언론인의 전문주의 확립 등의 선행 조치가 없는 직접 민주제 도입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5.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비판적 지식인 집단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인문 사회과학의 기초 학문이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질식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배려를 해야 한다. 일정 부분 이상의 예산을 관장하는 부서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자연과학 분야라 할지라도 시민과 소통능력, 공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소양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6. 민치가 되기 위해서는 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통치 방식에 대한 성찰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민치를 위한 비용은 비용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띤다. 비용과 편의의 이름으로 민치가 유보되어서는 헌법의 근간을 위배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 차원의 사례를 보면 직접 민주제를 제도화하고 있는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소득 수준도 높고 삶의 질도 높은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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