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정해랑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5.18광주민중항쟁 38주년이다. 이제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자들은 극소수로 몰리고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민주화운동으로 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안 된 점이 있고, 그 정신의 계승이 부족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5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실 그 시절에 살았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 중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부끄러움이다. 그리고 이어서 슬픔이다. 그러나 이제는 부끄러움과 슬픔만으로는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수 없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민중항쟁을 떠올리며 우리가 자주 부르는 ‘5월의 노래 2’라고 알려진 노래를 통해 광주민중항쟁 정신의 계승에 대해 살펴보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이 노래의 1절은 광주민중항쟁의 출발이 잔인한 폭력, 살해 등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에 대한 분노 이것이 광주민중항쟁 정신 계승의 정서적 토대가 될 것이다.
왜 쏘았지? 총. 왜 찔렀지? 칼.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5월 광주는 정말 당시 살았던 대다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서울역에 수만 군중이 모였지만 퇴각을 했다. 그리고는 안이하게 다음 상황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가온 건 계엄 확대. 형식은 그렇지만 전두환 일당의 제2의 쿠데타였다. 그런데도 위기의식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광주에서 주워온 유인물 한 장이 전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붉은 피를 솟게 했다.
‘전두환의 광주 시민 살육 작전’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은 차마 읽어 내려가기가 힘든 내용이었다. 이 유인물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민중항쟁의 학살. 이 노래의 2절은 광주민중항쟁 정신의 계승은 분명한 진상규명임을 밝혀준다. 그것은 학살이었다. 그리고 진상 은폐였다. 그것을 밝혀내고, 은폐된 것을 드러내야 한다.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치고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제3절에서는 분노와 부끄러움,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는 투쟁을 해 나가야만 광주민중항쟁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 준다. 광주민중항쟁 이후 ‘욕된 역사’를 고통 속에서 헤쳐 나가겠다는 각오로 많은 사람들이 각계 각 방면에서 광주민중항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1700만 촛불이 모이고 마침내 광주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가짜 보수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광주민중항쟁 당시부터 시작되었던 왜곡과 폄하는 오히려 이른바 민주정권이 들어선 뒤부터 더 심해졌다. 지금까지도 그런 소리를 자기들 네트웍을 통해 퍼뜨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왜 광주민중항쟁에 대해 몸서리를 칠까? 그들의 무장력을 무력화시킨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이 노래의 4절이다. 정식으로는 3절까지 있고, 누군가 4절을 만들어서 부르니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부른 듯하다. 여기에서 광주민중항쟁의 본질적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광주민중항쟁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시민이 무장을 하여 폭압적인 체제에 저항하여 싸웠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전두환으로 하여금 87년에 친위쿠데타를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연인원 17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서 평화적인 시위를 할 수 있게 만든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외에도 광주민중항쟁은 또 다른 의미를 역사적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이후 우리 역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본질에 대한 대중적 자각이었다.
미국이 우리 민족에 어떤 존재인지는 변혁 지향적인 지식인들에게는 많이 인식이 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때까지 거의 자각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4·19는 가짜 보수세력조차 ‘순수’하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하는데, 그 ‘순수’라는 것이 바로 ‘탈정치적’이라는 것이고, 외세에 대한 문제를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는 확대되어 갈수록 외세에 대한 문제제기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4·19혁명의 성공 이후 전개되는 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다.
4·19혁명이 5·16군사정변으로 짓밟힌 지 19년이 된 1980년. 마침내 광주민중항쟁에서 미국의 본질을 대중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맹아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후 그것을 견디기 힘든 가짜보수세력들이 이성을 잃고 발광하면서까지 광주민중항쟁을 부정하고, 북한의 조종을 받은 폭동 등으로 그 의미를 훼손하려 드는 것이다.
다시 5월이 왔다. 지난 촛불 혁명의 성과로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파면하였으며, 구속까지 시켰다. 그리고 대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였고, 이명박 역시 구속시켰다. 나아가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게까지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 봄은 불완전하다. 결국 국민 대중의 힘으로 확실하게 평화의 봄을 지켜야 하고, 적폐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일 것이다. ‘5월의 노래’를 힘차게 불러 보면서 그 때 겪었던 사람이든 아니든 이 사회의 진정한 모순 해결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