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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의 차이
민족적 동질성과 ‘미국 제일주의’의 산물

-김종철 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고문-

 

최근 며칠 동안 북미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한반도가 요동치는 것을 보며 나는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이라는 명제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문제의 발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발한 바로 그날인 5월 24일(미국 시각),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한 미북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바로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북미회담을 확실히 추진하겠다고 밝힌 그가 느닷없이 회담 취소라는 폭탄선언을 하자 남북의 정권은 물론이고 온 세계 언론이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북한이 맥스선더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아 남한과 미국 정부를 향해 거친 공격을 퍼붓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에게 모욕적 비난을 가한 것 등이 이유라고는 하지만 트럼프의 돌출적 언동은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고 해도 독선과 오만의 표현이라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를 한 지 몇 시간 만에 그 회담이 다시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김정은이 건설적 대화와 행동에 임할 것을 선택한다면, 그럴 때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남북한의 정권과 주민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뒤흔들고 있던 때인 지난 2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북녘 땅의 통일각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사실이 그날 저녁 국내외에 알려졌다.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보며 낙담하거나 허탈해 하던 남북의 동포들에게 두 정상의 신속하고 민첩한 만남은 무더위 끝에 내린 시원한 소낙비나 마찬가지였다.

 

김종철 칼럼 2-사진.jpeg

<사진출처 - 청와대>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튿날인 5월 27일 오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각각 발표한 합의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수립에 관해서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사실은 두 정상이 민족적 동질성과 우애를 특히 강조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마음이 더 가까워지고 모아지고, 평양과 서울이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라고 화답하며 이렇게 말했다. “최대의 국빈을 성대하게, 제대로 된 의전을 차려서 맞이해야 하는데 장소도 이렇게 제대로 못해드려 미안한 마음입니다. 좋은 결실이 꽃 피고 좋은 열매를 수확하는 가을 중에 평양에 오시면 성대하게 연회를 준비해서 맞이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두 차례의 만남에서도 남북한 지도자들은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약속했지만,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장전(章典) 또는 이정표’라는 평가는 받았으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그것을 묵살하면서 오히려 북한을 흡수통일하거나 붕괴시키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문 대통령은 취임 이래 한 해 넘게 70%부터 8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진취적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절대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은 위원장 역시 2018년 새해 들어 선대(김일성, 김정일)보다 과감하고 유연하게 남북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서 평화체제 수립 운동을 밀고 나가려고 노력했다. 이런 두 정상이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대국들을 상대로 지혜롭게 전략적 공조를 하고 있는 방식을 ‘문재인·김정은 모델’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나라의 주류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WASP(백인, 앵글로색슨족, 개신교도)가 오래 동안 지배해 왔고 지금도 그들의 절대적 영향권에 들어 있는 나라이다. 트럼프는 백인이자 개신교도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가 독일의 바이에른 왕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라서 게르만족의 후예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재벌이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로부터 물려받은 거액의 유산을 종자돈 삼아 원화로 5조~12조원(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추정)의 재산을 일구어냈지만,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월스트리트에서는 이단자처럼 따돌림을 받아왔다. 월스트리트는 지난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4,850만 달러를 후원한 데 비해 트럼프에게는 겨우 1만9,000 달러를 보냈을 뿐이다. 게다가 미국의 주류 언론은 거의 모두가 클린턴을 지지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트럼프는 자기 돈 1억 달러를 선거자금으로 쓰면서 71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그렇게 ‘정치적 기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지지 기반이 취약해서 취임 직후부터 돌출 행동을 거듭했다. 버락 오바마가 주도한 파리기후협약을 즉흥적으로 탈퇴하는가 하면 세계 무역체계를 뒤흔드는 ‘보호주의 정책’으로 국제적으로 호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부동산에 투기하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베팅’을 일삼았다. 가장 최근에 그가 저지른 무모한 짓은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곳에서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계의 환심을 사기에 그보다 더 좋은 ‘거사’는 없을 것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것을 ‘폭거’라고 비판하자 이스라엘군이 무력으로 많은 인명을 살상했다. 그 유혈 사건의 원천적 책임이 트럼프에게 있음은 물론인데도 그는 유럽연합과 중동 아랍국가들의 격렬한 비판을 외면했다. 트럼프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업적을 주도함으로써 오는 11월의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도록 하고, 그 여세로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이 재선되는 데 다 걸기(올인)를 하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역사적 과업에서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은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운동 기간에 줄곧 ‘미국 제일(America First)’을 외쳤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서 자본주의 진영의 대표가 된 미국은 스스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깃발을 내걸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지고 있다고 자랑해 왔다. 미국은 그런 구호 아래 세계 각지의 요충지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며 지배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오래 동안 미국의 ‘봉쇄·포위 전략’에 속박당해 온 나라가 북한이다. 1947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70년이 넘도록 북한은 미국의 집권자들로터 ‘악의 축’ 등 온갖 공격과 비난을 받으면서 지구 최후의 ‘밀봉된 국가’로 가시밭길을 헤쳐 나와야 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북한에 채워진 족쇄가 무려 70여년 만에 풀릴 가능성이 아주 커진 것이다. 그것도 ‘미국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악담과 저주를 없던 일로 한 뒤 그를 극찬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확실한 중재자’이자 파트너로 삼으면서 말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문재인·김정은 모델과 트럼프 모델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8천만 겨레는 트럼프가 안고 있는 정치적·인간적 문제들과 개인적 욕망을 대범하게 보아 넘기며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차분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27일 실무회담진을 판문점에 파견해 사흘 동안 북한 당국자들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 의전 등을 조율하게 했다. 나라 안팎의 전문가들은 오는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미리 합의한 내용에 서명하면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동의하는 형식으로 휴전기념일인 7월 27일에 ‘종전 선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확약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역사적 첫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국제법상 명확한 효력을 갖는 평화협정, 그리고 훨씬 더 나아가서 불가침조약을 맺는다면 한반도는 세계 평화의 전초기지로 발돋움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한반도의 8천만 겨레와 세계인들이 돌발적 변수가 터지지 않도록 날카로운 감시의 눈길을 계속 보내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에 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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